닉 커츠와 제이콥 윌슨, 라스베이거스를 향한 애슬레틱스의 우량주

메이저리거의 커리어를 수놓는 수많은 훈장 중, 일생에 단 한 번의 기회만이 허락되는 칭호가 있다. 바로 신인왕이다. 재도전이 불가능하다는 이 잔인한 희소성은 수상을 향한 갈증을 깊게 할뿐더러, 선수와 팬 모두에게 애틋하게 다가온다. 그렇기에 새로운 신인왕의 등장은 단순한 개인의 영광을 넘어선다. 한 시대를 풍미할 프랜차이즈 스타의 탄생을 알리는 찬란한 서막이자 미래를 약속하는 화려한 보증수표가 발행되는 순간인 것이다.
1947년 재키 로빈슨을 시작으로 약 80년에 달하는 메이저리그 신인왕의 역사 속 애슬레틱스는 9명의 수상자를 배출하며 통산 4위에 자리 잡고 있다. 1980년대에는 3년 연속 신인왕을1 배출했을 정도로 신인 육성에는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팀이다. 그리고 작년에는 36홈런으로 엄청난 파워를 뽐낸 닉 커츠가 만장일치로 수상하며 새크라멘토에서도 신인왕을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인상 깊은 점은 작년 AL 신인왕 투표 2위 역시 애슬레틱스 선수였다는 것이다. 바로 지난 시즌 초 뛰어난 컨택으로 리그 타격 2위를 기록하며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올스타 유격수 제이콥 윌슨이다. 당해 신인왕 투표 1, 2위를 한 팀이 독식한 것은 역대 9번째 사례이며, ‘아메리칸 리그’로 좁히면 1984년 매리너스 이후로, ‘두 명 다 타자’로 조건을 더 좁히면 1975년 레드삭스 이후로 처음일 정도로 상당히 희귀한 사례이다. 즉 2025년의 애슬레틱스는 라이징스타 타자 둘을 한 해에 키워낸 역사상 손꼽히는 시즌을 보낸 것이다.
커츠와 윌슨의 공통점이라면 드래프트 1라운드 상위권에 지명되어,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팀에서 밀어준 유망주였다는 것이다. 두 선수 모두 지명 2년 차에 빅리그 무대를 밟았고, 끝내기 안타 등 인상 깊은 활약으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4월 24일 이번 시즌 팀의 첫 끝내기 승리를 안긴 제이콥 윌슨
먼저 1년 선배인 제이콥 윌슨은 실버 슬러거 수상자이자 올스타 유격수였던 아버지 잭 윌슨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유격수로 뛰고 있다. 그의 가장 뛰어난 장점이라면 리그에서 제일가는 컨택이다. 39개로 메이저리그에서 두 번째로 적은 삼진과 9.6%에 불과한 낮은 헛스윙률 등 공을 배트에 맞히는 능력이 최상급이었다.
그렇다고 윌슨의 가치를 단순히 컨택에만 한정 지을 수는 없다. 메이저리그 클럽하우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덕분인지, 경기 상황을 읽는 그의 BQ 역시 신인답지 않게 노련하다. 이는 하이 레버리지(High-Leverage) 상황에서2 더욱 빛을 발했다. 승부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안타나 끝내기 안타를 생산해내는 클러치 본능을 과시하며 해당 상황에서 타율 0.344를 기록한 것이다. 실제로 1년 반 만에 기록한 3번의 끝내기 안타는 그의 배트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빛난다는 증거다. 그 결과 첫 풀타임 시즌임에도 3할 타율을 여유롭게 넘겼고, 151안타-13홈런-OPS 0.8이라는 호성적을 남겼다.

7월 25일 신인 최초 6안타 4홈런 경기를 완성하는 커츠의 대형 쓰리런 홈런
한편 1년 후배이자 동생인 1루수 닉 커츠의 활약도 눈부셨다. 마이너리그를 단 33경기 만에 졸업하더니, 여름 들어 문자 그대로 리그를 폭격했다. 엄청난 파워와 배트스피드에서 비롯된 배럴 타구 및 장타 생산으로 6월에 10홈런을 넘겼고, 7월에는 OPS 1.433 및 월간 11홈런으로 이달의 선수상과 신인상을 휩쓴 것이다.
특히 7월 25일 애스트로스의 다이킨 파크에서 보여준 6안타 4홈런 8타점 활약은 애슬레틱스 팬들을 넘어 리그 전체에 엄청난 혜성이 등장했음을 알린 쇼케이스였다. 그 결과 시즌 중반까지는 윌슨이 받을 것이 확실시되던 신인왕도 뺏어왔고, ALL-MLB 세컨드 팀, 실버 슬러거 수상 등 데뷔 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지난 시즌 후, 7년 8,600만 달러의 연장 계약을 맺으며 구단 신기록을 세운 타일러 소더스트롬
컨택과 파워라는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두 신인 덕에 구단의 리빌딩 기조에도 속력이 붙었다. 타자 친화 구장인 수터 헬스 파크를 이용해 마운드의 활약이 아쉬웠음에도, 76승으로 팀이 3년 연속 성적을 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브렌트 루커, 로렌스 버틀러, 타일러 소더스트롬과 차례대로 연장 계약을 체결하며 타선의 장기적인 비전을 마련했다.
특정 포지션의 주전 자리가 비었을 때, 임시로 그 자리를 맡기 위한 스탑갭(Stopgap)을 위해 2루 및 외야 수비가 가능한 제프 맥닐을 영입했음은 물론이다. 아쉬움이 짙은 투수진에 보강이 더해진다면, 멀게만 느꼈던 포스트시즌이라는 문을 노크할 수 있을 만큼 기량이 성장한 게 눈에 띈다. 침묵하던 스몰마켓 구단의 성장이 본격화한 것이다.

득점 찬스에서 땅볼로 물러난 윌슨, 그의 땅볼 타구 비율은 리그 평균보다 9%p나 높다
그러나 두 선수의 단점 역시 명확하다. 먼저 컨택이 장점인 윌슨은 반대급부로 파워가 빈약해 배럴 타구 및 장타 생산에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웬만하면 공을 맞히려는 습관 때문에 볼넷 생산 및 타율-출루율의 갭이 빈약하기도 하다. BABIP의 불운이 이어진다면 슬럼프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7월 월간 BABIP이 1할대로 떨어지자, 출루율-장타율도 나란히 급락하며 월간 OPS 0.4를 기록하기도 했다. 확실한 핸들링에 비해 타구 판단과 범위를 아우르는 OAA는 아직 음수에 그치고 있으며, 주전 유격수에게 기대되는 빠른 주력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G 트윈스 출신의 좌투 디트릭 엔스에게 삼진으로 물러나는 닉 커츠
커츠의 경우 거포로서 지니는 필연적인 약점이 따라다닌다. 바로 높은 헛스윙률과 삼진율이다. 윌슨의 장단점처럼 어찌 보면 양날의 검 같은 플레이스타일이기는 하다. 더불어 좌투 상대로는 타율이 1할대일 정도로 좌상바이다. 물론 좌투로도 9홈런을 쏘아올리며 걸리면 넘어간다는 것을 보여줬으나, 상대가 공략하기 쉬운 스타일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규정타석을 넘기지 못했음에도, OAA가 -6을 찍은 수비력 또한 반드시 메워야 할 구멍이다. 아직 단점 보완이 충분히 가능한 20대 중반의 유망주들이기에 강한 비난이 아닌, 모난 데 없는 완성형 선수가 되기를 응원한다.


2024년 오클랜드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보낸 애슬레틱스 최고의 히트 상품은 브렌트 루커와 메이슨 밀러였다. 해당 시즌 각각 실버 슬러거와 올스타 선정으로 화려한 한 해를 보냈으나, 아쉬운 점도 명확했다. 지명타자, 마무리 투수라는 포지션으로는 팀의 리빌딩을 이끄는 코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밀러는 이듬해 트레이드로 애슬레틱스를 떠났다.
커츠와 윌슨은 이러한 아쉬움을 완벽히 지워줄 수 있는 선수들이다. 타자로서 뛰어난 타격을 가진 것은 물론, 내야의 포지션 플레이어로서 수비도 담당해 코어 자원으로 불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커츠의 진가는 기록지 밖에서도 빛난다. 대학 시절 팀의 주장을 맡으며 다진 성숙한 리더십은, 애슬레틱스의 클럽하우스를 지탱할 차세대 리더로 낙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프런트 역시 그들의 잠재력이 뛰어난 것을 명확히 알고 있고, 윌슨은 시즌 후 7년 7,000만 달러의 연장 계약을 체결하며 일찌감치 라스베이거스 시대를 함께할 것을 선언했다. 더불어 그들과 함께 타선을 이끄는 셰이 랭글리어스, 로렌스 버틀러의 활약도 이어지는 상황, 새 시대를 준비 중인 프랜차이즈에 밝은 미래를 꿈꾸게 하는 자원들이다.

팔뚝 하이파이브의 원조이자 1989년 애슬레틱스의 우승을 이끌었던 마크 맥과이어-호세 칸세코의 배쉬 브라더스
애슬레틱스의 우승을 이끈 코어는 1930년대 지미 폭스-미키 코크런, 1970년대 레지 잭슨-살 반도, 1980년대 마크 맥과이어-호세 칸세코의 배쉬 브라더스 등 언제나 화려한 타격 듀오였다. 과연 닉 커츠-제이콥 윌슨 듀오는 프랜차이즈의 10번째 우승을 일궈낼 수 있을까. 본격적으로 시작된 구단주의 투자, 그리고 마크 맥과이어의 특별 어시스턴트 합류까지. 잠들어있던 왕조가 깨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