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2일부터 25일까지 워싱턴 내셔널스 유소년 야구 아카데미에서는 미국 여자 프로야구 리그(WPBL)의 트라이아웃이 열렸다. 이번 행사에는 약 600명의 선수가 참가해 테스트를 받았으며, 이 가운데 상위 150명은 올해 10월 열리는 WPBL 드래프트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드래프트에 지명된 선수들은 내년 봄 개막하는 WPBL 무대에 설 예정이다.

특히 이번 드래프트 현장에는 미국 여자 야구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함께했다. WPBL 명예 회장인 메이벨 블레어가 시구에 나섰고,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여자 선수로서 최초의 승리투수가 된 모네 데이비스도 시구를 맡아 의미를 더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WPBL의 미디어 파트너인 프리맨틀이 현장을 찾았으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See Her, Be Her〉 촬영도 함께 진행되었다.

AAGPBL, 그리고 Rosie The Riveter

WPBL은 사실 미국 최초의 여자 야구 리그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70여 년 전, 미국에는 이미 ‘AAGPBL(All-American Girls Professional Baseball League)’이라는 여자 프로야구 리그가 존재했다.

AAGPBL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시카고 컵스 구단주 필립 K. 리글리가 남성 선수들의 대거 군 입대로 인해 발생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창설한 리그다. 출범 당시 커노샤 코메츠, 레이신 벨스, 록퍼드 피치스, 사우스벤드 블루 삭스 등 4개 구단으로 시작했으며, 1948년에는 10개 구단으로까지 확장됐다. 이 리그는 1943년 약 17만 6천 명의 관중을 동원한 데 이어, 1948년에는 90만 명 이상의 관중을 끌어모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AAGPBL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당시 미국 사회는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라는 모토와 함께 여성들의 노동 참여를 장려하는 분위기와 동시에, 전통적 여성상(가정 이데올로기, Cult of Domesticity)을 강요하는 모순된 가치관이 공존하고 있었다.

리벳공 로지는 1942년 발표된 노래 〈Rosie the Riveter〉에서 여성 노동자가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담아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독려함에서 비롯되었다. 1943년에는 노먼 록웰이 잡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표지에 로지를 그려내면서 대중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곧 “공적 영역에서는 성실하고 능률적인 노동자, 사적 영역에서는 정숙하고 차분한 여성”이라는 상반된 기대를 만들어냈다.

AAGPBL 선수들도 이 모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경기장에서는 남성과 똑같은 조건 속에서 경쟁했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여성다움’을 요구받았다. 선수들은 존 로버트 파워스 모델링 스쿨과 제휴한 ‘레이디스 스쿨’에서 특별 훈련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Charm School Manual이라는 매뉴얼이 존재했다. 이 규정에는 긴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고, 항상 립스틱을 바르며, 사교 모임 시간과 숙소 통금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지침이 포함되었다.

또한 선수들은 원피스형 치마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야 했고 이로 인해 슬라이딩 시 다리에 심한 찰과상을 입거나, 투구와 스윙 동작이 방해를 받는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이처럼 AAGPBL 소속 선수들이 겪었던 이중적 요구와 어려움은 훗날 영화 〈그들만의 리그(A League of Their Own)〉로 제작되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달라진 미국 여자 스포츠 환경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 미국 여자야구는 WPBL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과거 AAGPBL이 MLB의 공백을 메우는 수동적인 역할에 머물렀다면, 오늘날의 WPBL은 남성 스포츠에 종속되지 않고 선수들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적인 리그가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 미국 여성 스포츠 전반이 따르고 있는 여성 선수 복지 강화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대표적으로 WNBA는 2020년 단체협약(CBA)을 통해 최대 1년의 전액 유급 출산 휴가를 보장하고, 원정 경기 시 아이 동반을 지원하며, 모유 수유 시설을 마련하는 등 선수들의 삶과 커리어를 동시에 존중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WPBL 역시 시즌을 짧게 운영함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 정책을 도입했다. WPBL은 주 4일, 주당 2경기 체제의 4주 정규 시즌과 올스타전, 그리고 2주간의 플레이오프로 구성된다. 짧은 일정이지만, 시즌 중 숙소와 여행 경비를 제공하고, 선수 개개인의 가정 및 직업 상황을 존중하며 유연한 스케줄 조정을 보장할 계획이다.

이처럼 미국 여성 스포츠의 복지 향상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여성 엘리트 스포츠 시장의 결과물이다. 최근 미국 여성 스포츠는 각종 기록을 경신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WNBA는 시즌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고, NWSL(여자 프로 축구 리그)은 2024년 사상 처음으로 연간 200만 관중 돌파를 이뤄냈다.

이런 경제적 성장은 주요 기업들의 스폰서십을 이끌어냈다. WNBA는 2018년 나이키와 리그 공식 유니폼 파트너십을 맺었고, 구글은 “Changemakers” 프로그램을 통해 WNBA 팀을 공식 후원했다.

또한, 미국 여성 스포츠의 발전은 여성 선수들의 권익 향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여자축구대표팀의 임금 평등 투쟁이다. 2016년 선수들은 임금 및 처우 차별을 이유로 EEOC에 공식 진정을 제기했고, 이는 집단 소송으로 이어졌다. 결국 2022년 2월, 미국축구협회는 전·현직 여자 대표팀 선수들에게 총 2,200만 달러를 지급하고, 은퇴 선수 지원 및 여자 축구 발전 기금으로 200만 달러를 추가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미국 여자축구대표팀과 남자대표팀은 동일한 경제적 조건을 반영한 새로운 단체협약(CBA)에 합의했다. 이를 통해 상금 분배, 스폰서 수익 배분, 출전 수당 등이 남녀 동등하게 보장되었다. 나아가 이는 「Equal Pay for Team USA Act」 입법으로 이어져, 미국 국가대표 선수 전 종목에서 성별 임금 평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MLB와 여자 야구의 성장

이렇듯 최근 여성 스포츠 시장은 전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여성 선수들의 복지와 인권 역시 한층 향상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여자 야구 산업 확장에 그치지 않고, MLB 내부에서도 여성의 야구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5월 29일, MLB는 AUSL(Athletes Unlimited Softball League)의 지분 20% 이상을 인수했다. MLB가 여성 소프트볼 리그에 직접 투자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MLB 부커미셔너 노아 가든은 “소프트볼에는 엄청난 성장 잠재력이 있으며, 지금이 바로 참여할 적기”라며 2025년 창설된 AUSL에 대한 강력한 지원 의지를 밝혔다.

AUSL 이전에도 NPF(National Pro Fastpitch)라는 여성 소프트볼 리그가 존재했으나, 당시에는 스폰서십과 투자 부족으로 인해 2021년 활동을 중단했다. 포브스는 2018년 기사 〈National Pro Fastpitch After 15 Years Is Like Major League Baseball A Century Ago〉에서 NPF의 열악한 지원 현실을 “100년 전 메이저리그와 같은 수준”이라고 표현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낸 바 있다.

과거의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해, MLB는 향후 AUSL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공동 영업 및 마케팅을 추진하고, MLB가 가진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방송 배급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올스타전과 포스트시즌 같은 MLB의 주요 이벤트 속에서도 AUSL 관련 콘텐츠를 노출해, 리그의 인지도를 확대할 예정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WPBL(여자 프로야구 리그), AUSL(여자 소프트볼 리그)뿐만 아니라, PWHL(여자 아이스하키 리그), Unrivaled(3대3 여자 농구 리그) 등 다양한 엘리트 여성 스포츠 리그들이 새롭게 등장하며 엘리트 선수들의 무대를 확장하고 있다.

딜로이트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엘리트 스포츠 매출은 2023년 약 9억 8천만 달러에서 2024년 13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2025년에는 23억 5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여성 스포츠 산업은 현재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을 지닌 거대한 시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WPBL을 기대하며

현재 여성 스포츠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미국 여자야구 역시 AUSL과 WPBL의 등장을 통해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과거 AAGPBL은 여성 선수들에게 보수적인 규정을 적용했지만, 이는 더 이상 오늘날 여성 스포츠의 모습이 아니다. 이제 여성 스포츠는 단순히 남성 스포츠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수단이 아닌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늘날 여성 스포츠는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을 뿐 아니라 상업적 투자까지 활발히 유치하고 있다. 앞으로 과거의 실패를 딛고, 숨겨진 매력을 발굴해 성장하는 여성 스포츠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도 좋다.

WPBL은 2026년 5월 개막을 앞두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MLB의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WPBL 경기를 직접 시청하고, 기존과는 다른 색다른 경험을 누려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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