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고타저’와 ‘타고투저’. 투타 밸런스가 한쪽으로 기울며 경기의 양상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이는 선수들의 기량만 아니라, 경기장 밖의 자연환경에도 깊이 영향을 받는다. 특히 야구장마다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 ‘투수에게 유리한 구장’이라는 평이 따라붙는 이유는 단순한 구조 차이만은 아니다.
같은 규격의 구장이라도 여러 자연조건에 따라 타구의 비거리나 공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이는 경기 전체의 흐름을 바꿔놓는다. 야구장을 가득 채우는 보이지 않는 공기, 그리고 그 공기를 통제하는 자연은 때로 투타 밸런스마저 결정짓는다. 그렇다면, 기술과 전략을 넘어 경기를 좌우하는 이 ‘보이지 않는 변수’는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지금부터 자연이 지배하는 야구장의 밸런스를 분석해 본다.

타자 친화적인 구장을 하나만 꼽으라 하면 아마 다수의 팬이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 ‘쿠어스 필드’를 떠올릴 것이다. 100을 기준으로 구장의 성향을 나타내는 지표인 ‘파크팩터’에서 110을 넘기며 항상 MLB 구장 중 타자 친화 1위를 차지하는 곳이기도 하다. 타고투저(일명 ‘타고’) 구장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높은 해발고도.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해발고도가 높으면 타자에게 유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파크팩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구장의 파크팩터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소는 앞서 언급한 구장의 해발고도다. 해발고도가 높을수록 공기가 적어 기압이 떨어지고, 공기 저항이 줄어 타구가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 그로 인해 쿠어스 필드는 리그에서 손꼽히도록 넓은 그라운드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타자들에게 유리하다는 인식이 더 강렬하게 박혀있다.

그리고 고지대 구장일수록 야구공의 회전에 영향을 미치는 ‘마그누스 효과’가 감소한다. 마그누스 효과란 회전하는 공이 유체(공기) 속을 지날 때 압력 차이에 의해 수직 방향으로 힘을 받는 현상을 의미한다. 공이 회전하면서 한쪽 면에서는 공기 흐름이 빨라져 압력이 낮아지고, 반대쪽 면에서는 공기 흐름이 느려져 압력이 높아지는데, 이 압력 차이가 마그누스 힘을 생성해 압력이 낮은 쪽으로 공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마그누스 힘은 공기 밀도에 직접적으로 비례하므로, 밀도가 낮을수록 그 힘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즉 공기 밀도가 낮은 고지대에서는 공의 회전 수가 줄어들어, 투수들이 타자를 상대하는데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 던진 공의 회전 수가 줄어 구위가 약해지는 반면, 타구는 더 빨라지고 멀리 뻗어가 타자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더불어 돔구장의 경우 돔이 열려있을 때보다 닫혀있을 때 타구가 더 잘 날아가는데, 외부 바람을 차단해 나타나는 낮은 공기 밀도와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상승 기류가 원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고도가 MLB 구장 중 TOP 3인 쿠어스 필드, 체이스 필드, 트루이스트 파크 모두 타구가 잘 뻗어가며, 돔구장인 다이킨 파크는 돔이 닫혀있을 때 타구가 더 멀리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트루이스트 파크의 파크팩터는 리그 평균치에 불과한데, 이 이유는 후술하겠다.


다음으로 파크팩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야구장의 기온이다. 기온이 오를수록 공기의 밀도가 낮아져, 공기 저항이 감소. 타구가 더 멀리 날아가게 된다. 메이저리그 세이버메트릭스를 다루는 사이트인 ‘베이스볼 서번트’에서도 다음과 같은 언급이 나온다.
‘동일한 발사 조건에서 기온이 10°F 오르거나 / 고도가 800ft 높아지거나 / 돔구장의 돔이 닫혀있으면 타구의 비거리가 1% 증가한다.’
다만, 기온과 해발고도는 반비례적인 특성을 지닌 것들이기에 둘 중 하나가 더 도드라진 것에 따라 구장의 특성이 결정된다. 대표적으로, 현 탬파베이 레이스의 임시 홈구장인 조지 M. 스타인브레너 필드는 리그에서 가장 더운 구장이나 해발고도가 낮아 투고타저(일명 ‘투고’)의 성격을 띤다. 반면, 쿠어스 필드는 높은 고도로 인한 낮은 기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높은 곳에 있어 타고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쿠어스 필드의 해발고도는 약 1,600m에 이른다)

한편 구장 기온이 3위에 위치한 수터 헬스 파크는 고도가 낮음에도, 타구가 상당히 잘 뻗어나가고 파크팩터 또한 리그 최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역시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다. (고도가 높음에도 기온이 높은 체이스 필드의 최근 평균 기온은 섭씨 39도, 우리나라 더위는 애교로 만드는 미국의 위엄)

다음 요소는 습도다. 습도는 상단에서 언급한 고도, 기온과 달리 높을수록 공기 저항이 세져 타구의 비거리를 감소시킨다. 따라서 습도가 낮을수록 타구의 비거리가 올라가 타자들에게 유리한데, 이것이 트루이스트 파크와 수터 헬스 파크가 파크 팩터의 변수로 작용하는 원인이다. 트루이스트 파크가 위치한 애틀랜타는 미국의 타지에 비해 습한 지역으로 여름철에 특히 습한 기후가 이어진다. 따라서, 높은 고도에 있음에도 타구가 잘 뻗지 않는 투고가 강세를 띠는 것이다. 반대로, 새크라멘토에 위치한 수터 헬스 파크는 미 서부 특유의 사막성 기후로 인해 고온 건조한 기후가 특징이다. 그 결과 고도가 리그에서 손꼽히도록 낮은 구장임에도 불구, 타고 성향이 짙은 야구장이 된 것.

한편, 습도가 높은 해안가 근방에 자리 잡은 오라클 파크나 T-모바일 파크는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아 리그에서 유명한 투고 구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넓은 그라운드를 지닌 동시에 한강과 가까워 높은 습도를 유지하는 덕에 리그 1위 투고 구장이 된 우리나라의 잠실 야구장도 마찬가지.
종합적으로, 타고 구장이 되기 위해서는 장타가 잘 나와야 하고 타구가 잘 뻗어가야 그 확률이 올라간다. 그리고 타구가 잘 뻗어가기 위해서는 공기 밀도가 낮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해발 고도가 높거나 / 기온이 높거나 / 습도가 낮아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2022년부터 MLB 전 구장에 공인구 상태의 표준화를 위해 습도 조절 장치인 휴미도어를 사용하고 있으나(글 최상단의 이미지), 자연의 섭리를 완벽히 거스르는 방법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투고타저’, ‘타고투저’의 싸움은 단지 투수와 타자의 문제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즉 고도와 기온, 습도 같은 자연조건이 게임의 흐름을 좌우한다. 쿠어스 필드에서 유난히 장타가 많이 나오는 이유도, 오라클 파크에서 유독 타자들이 고전하는 이유도 모두 공기 속에 답이 있다. 기술과 전략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때로는 하늘과 땅이 야구의 룰을 다시 쓰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힘, 자연이 야구의 흐름을 지배하는 것이다.
출처
- baseballsavant.mlb.com
- 금성출판사 :: 티칭백과
Infield Report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굳 유익하네요 기온과 습도가 야구에 영향끼친다는 재밌는 사실 알고갑니다
자연을 이겨내야하는 구장.
재밌어요
이런 하이 퀄리티의 칼럼을 무료로 읽을 수 있다니.. 인필드 리포트는 멋진 곳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