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속 전략은 점점 더 정밀해진다. 구속부터 투구 궤적, 수비 반응 시간 등 모든 플레이를 측정한다. 구단들은 데이터를 활용해 경기를 분석한다. 구단 운영은 전광판에 기록되지 않는 미세 변수들, 경기 환경 자체를 조율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잔디다. 한때는 경기 배경으로만 보이던 잔디는 전략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야구장 잔디는 타구 속도, 반발각, 수비 동선, 경기 흐름 전체에 미세하면서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잔디를 이용한 전략

2005년 다저스는 잔디를 이용한 전략을 사용했다. 수비력이 좋지 않았던 2루수 제프 켄트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2루 수비 구역 잔디를 25.4mm로 길게 관리했다. 2004년 골드 글러브 수상자였던 유격수 세사르 이즈투리스가 지키는 구역은 19mm로 짧게 깎았다. 좌우 비대칭 경사를 만들었다.

타구가 2루 쪽으로 가면 잔디와 부딪히며 급격히 속도를 잃는다. 유격수 쪽으로 가면 타구가 튀어 나갈 확률이 높아진다. 잔디를 이용해 한 선수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보완하고, 다른 선수의 장점을 살렸다.

Jeff Kent won't quite make it to the Hall of Fame - Sports Illustrated

2005년부터 다저스에서 활약한 제프 켄트

공이 잔디 위를 구를 때 가장 큰 변수는 잔디와 접촉하는 시간이다. 잔디가 높으면 타구 회전이 잔디와 접촉하면 에너지를 잃는다. 접촉면이 넓어지니 마찰계수도 올라가고 공은 급격히 감속한다. 잔디가 짧으면 잎 끝이 눕고 표면이 평평해져 거의 인조잔디에 가까운 미끄러운 효과가 나기도 한다.

캔자스주립대는 2.5cm 잔디 높이를 딱 두 배인 5cm로 늘려 실험했다. 타석에서 내야수까지 거리인 30.5m를 구르는 땅볼 시간은 평균 0.3초 이상 늘었다. 내야수가 반 걸음 더 나갈 수 있는 시간이다. 세이프냐 아웃이냐를 가르기에도 충분하다.

가장 중요한 건 첫 바운드다. 잔디가 길면 반발각이 낮아져 공이 높이 튀지 않는다. 짧으면 각도가 커져 간혹 수비수 키를 넘어가는 불규칙 바운드까지 나온다. 투수, 타자, 수비수 모두가 예측과 대응 시간을 두고 싸우는 야구에서 잔디의 힘든 무시할 수 없다.

진화하는 잔디 관리 기술

MLB 잔디 관리실은 작은 연구소다. 센서 네트워크와 머신러닝이 땅속 수분부터 잔디 끝단 높이까지 초단위로 기록한다. 그 데이터는 여러 방면으로 도움이 된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오라클 파크 위로 자율 드론을 띄운다. 드론은 10분 만에 그리드 패턴으로 비행하며 표면 온도, 수분, 염분을 측정한다. 지면에 매설된 12개 토양 센서에서 올라오는 값과 비교해 한눈에 볼 수 있는 열, 수분 히트맵을 만든다. 샌프란시스코는 이런 식으로 야구 경기, 각종 이벤트에 대응한다.

경기장 속 12개 토양 센서 네트워크는 드론과 통신한다. 샌프란시스코는 선수들에게 일관성 있는 경기장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다. 체계적인 관리 덕분에 물 소비량도 다른 경기장보다 낮다.

구장을 새로 깔거나 교체할 때는 3D 레이저 스캐너를 활용한다. 1cm 간격으로 정밀하게 지도를 그린다. 설계 도면과 겹쳐 보면 어디가 길고 짧은지 바로 알 수 있다. 기상과 토양 데이터를 학습해 시듦을 예측하기도 한다.

환경에 맞게 변하는 잔디

야구장 잔디 길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 잔디의 지상 조직 1/3 이상을 깎으면 뿌리 생장이 6일에서 최대 2주간 멈춘다. 이는 잔디에게 큰 스트레스다. 깎은 잔디를 수거하면 포함된 질소 성분이 제거되어 연간 질소 비료 사용량이 최대 75%까지 증가한다.

물론 잔디를 길게 유지하면 비용은 줄어든다. 하지만 타구 속도가 크게 줄어서 느린 구장이 된다. 가장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그라운드 키퍼와 데이터 분석가들의 숙제다.

환경 변화도 잔디에게 스트레스다. 사막 기후에 물 부족이 겹친 서부 구장들은 인조잔디로 방향을 틀고 있다. 애리조나 체이스 필드는 2019년부터 Shaw Sports Turf사의 B1K 시스템을 도입했다. 천연잔디보다 반발은 약간 낮지만 공이 깎여 굴절되는 현상 없이 깨끗한 바운드를 만들어 야수들이 포구 예측에 도움을 준다.

가장 큰 장점은 물이다. 연간 200만 갤런이 절약 된다. 돔을 닫아 햇빛이 부족한 경기에서도 잔디 품질이 변하지 않는다. 잔디에 햇빛을 주기 위해 지붕을 열 필요가 없으니 경기장 냉방 에너지 절약도 된다.

Chase Field Information Guide | Arizona Diamondbacks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홈구장 체이스 필드

하지만 인조 잔디도 뚜렷한 단점이 있다. 한여름 직사광선 아래에서 표면 온도가 가파르게 치솟는다.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살수하여 온도를 낮추어야 한다. 경기 중 그라운드 타임아웃을 두고 살수를 해야 하는 새로운 비용도 생긴다. 인조 잔디에서 충격 흡수와 내구성 등 많은 역할을 하는 고무 알갱이를 매년 보충하고 소독해야 한다. 8~10년마다 300만 달러를 들여 카펫을 통째로 교체해야 한다. 물 절약과 당장 비용 절감은 됐지만 숨은 유지비는 늘어난다.

최근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은 하이브리드 잔디다. 천연 잔디 뿌리층에 폴리에틸렌 섬유를 5~10% 정도 심어 뿌리가 섬유를 감아들인다. 잔디가 플레이가 더 크게 영향을 주는 유럽 축구에서는 이미 늘어나고 있다.

가장 큰 이점은 내구성과 유지관리다. 천연 잔디에 비해 밟힘이나 뜯김에 견디는 힘이 세진다. 연이은 경기 일정이나 콘서트 같은 대형 이벤트에도 잔디가 버텨낸다. NFL 그린베이 패커스 홈구장 램보 필드도 하이브리드 잔디를 도입해 혹독한 기후와 빈번한 이벤트에 대비한다.

With snow in the forecast, Green Bay Packers put out the call for fans to  help clear snow from Lambeau Field – New York Daily News

강추위로 유명한 램보 필드

MLB에서는 밀워키 브루어스가 2023년 하이브리드 잔디를 처음 도입했다. 밀워키 선수들은 움푹 파이는 현상이 거의 생기지 않는 것에 놀랐다. 수석 그라운드 키퍼는 선수들 발 디딤 안전성과 경기력 유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이런 장점들 덕분에 사막과 관광의 도시인 라스베이거스에 건설 예정인 애슬레틱스 스타디움에도 하이브리드 잔디가 적절하단는 의견이 있다. 폭염 기후이지만 돔 구장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릴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가장 조용한 전략가, 잔디

야구장 잔디는 경기의 핵심 전략이다. 잔디의 품종, 길이 등 변수는 경기 전체 리듬까지 좌우한다. 구단은 선수 기량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환경을 정교하게 조율한다.

천연 잔디, 인조 잔디의 장단점을 해결할 하이브리드 잔디까지 균형적 특성은 구단만의 매력이자 전략이다. 이를 데이터 기반으로 관리하는 기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잔디는 선수들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조용히 경기력을 도와주고 있다.

앞으로도 구단과 그라운드 키퍼들은 뒤에서 선수들 경기력 향상을 위해 잔디를 설계할 것이다. 기후 변화, 환경 보호, 많아지는 이벤트 등 복잡해지고 있는 환경 속에서 잔디는 진화는 어디까지 일까.

사진 출처 / MLB.com, Sports Illustrated, GreenSight, New York Daily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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