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은 타이밍이고, 투구는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다.“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레전드 투수인 워렌 스판(Warren Spahn)으로부터 나온 이 말은 야구계에서 오래도록 회자되는 격언이다.

실제로 야구라는 스포츠가 탄생한 이래, 투수들은 타자들의 타이밍을 무너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 왔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구종과 투구폼, 전략들이 발전해왔다.

야구에는 ‘구속’이라는 절대 불변의 가치가 존재하지만, 그 이면에는 타이밍을 지배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싸움이 늘 함께하고 있다.

그렇다면 투수의 디셉션(Deception), 즉 타자의 타이밍을 흐트리는 능력을 정량화해서 수치로 나타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디셉션을 수치로 나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디셉션은 단순한 트릭이 아니라, 타자의 시선이나 반응을 교란하고 타이밍이나 리듬을 무너트리기 위한 투구의 기술이다.

예를 들어, 클레이튼 커쇼는 투구 도중 멈칫하는 이중 키킹 동작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흔들고, 자니 쿠에토는 불규칙한 템포 변화로 리듬을 무너뜨린다. 류현진은 큰 체구를 이용하여 릴리스 포인트를 감추거나, 팔 스윙을 숨기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디셉션을 활용한다. 이처럼 디셉션은 투수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구속이나 회전수처럼 정량적으로 수치화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러나 디셉션을 수치로 완전히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디셉션은 릴리스 포인트, 회전축, 투구 메커니즘 등 다양한 요소에서 드러난다. 이 요소들을 정리하고 분석한다면, 투수의 디셉션 능력을 일정 부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척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디셉션 스코어(Deception Score)‘라는 이름으로 디셉션을 분석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 지표는 릴리스 포인트의 분산(40%), 구속 차이(30%), 회전축의 일관성(30%)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가중치로 반영해, 0에서 1 사이의 점수로 디셉션 수준을 수치화한다. 점수가 1에 가까울 수록 디셉션이 좋은 투수이다.

위 차트는 2025년 3월까지의 MLB 정규 시즌 및 스프링 트레이닝 데이터를 바탕으로, 템파베이 레이스 투수들의 Statcast 데이터를 활용하여 적용한 예시다. 메이슨 몽고메리가 가장 뛰어난 디셉션 능력을 보여줬고, 제이콥 웨그스펙과 헌터 비기가 그 뒤를 잇는다. 반면 알렉스 페이도, 메이슨 잉글러트는 디셉션 능력이 나쁜 편에 속해, 타자들에게 투구를 파악당하기가 더 쉽다.

앞서 언급했듯, 릴리스 포인트의 분산(40%), 구속 차이(30%), 회전축의 일관성(30%)의 요소들을 반영했고, 각 요소별 데이터는 다음과 같다.

릴리스 포인트 분산 영역에서는 일관된 매커니즘과 릴리스 포인트를 지닌 투수를 디셉션이 좋은 투수로 평가한다. (숫자가 낮을수록 좋다.)
해당 요소에서는 제이콥 웨그스펙, 타지 브래들리, 메이슨 몽고메리가 강점을 보였다.

구속 차이 영역은 패스트볼과 변화구의 구속 차이가 타자의 타이밍을 방해한다고 보기 때문에 디셉션 효과가 크다고 평가한다. (숫자가 높을수록 좋다.)
해당 요소에서는 헌터 비기, 제이콥 웨그스펙, 조 보일이 강점을 보였다.

회전축 일관성 영역에서는 적은 회전축 변동성이 뛰어난 터널링을 만드는 요소로 평가한다. (숫자가 낮을수록 좋다.)해당 요소에서는 메이슨 몽고메리가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고, 셰인 바즈와 셰인 맥클래너핸도 강점을 보였다.

‘디셉션 스코어’는 이제야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불완전한 지표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지표 하나의 완성도가 아니라, 투수의 디셉션이라는 개념을 수치로 해석하려는 시도 자에 있다.

야구는 점점 더 미세한 움직임을 수치로 측정하고,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디셉션 또한 마찬가지다. 투수의 리듬, 템포, 릴리스 타이밍 같은 정성적 요소들이 정량의 영역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디셉션을 수치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은 분명 야구 분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사진 출처/MLB.com, YouTube(Antonelli Baseball)
자료 출처/Medium(By Tyler Curry)


Infield Report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

0 Comments
Oldest
Newest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