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북두의권 캐릭터 ‘라오우’의 명장면을 세레머니로 쓰고 있는 스기모토 유타로 (사진출처 : 스포니치 スポニチ)
2022년 오릭스 버팔로스가 26년 만의 일본 시리즈를 우승할 당시, 대부분 일본 시리즈 우승의 주역을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 혹은 타자 ‘요시다 마사타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무리는 아니다. 둘은 실제로 각각 2024년 LA 다저스, 2023년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하며 MLB에 진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일본 시리즈 MVP는 ‘스기모토 유타로’라는, 둘보다는 한국에서는 이름이 익히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다. 오늘 그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후배 요시다 마사타카와 함께 대학리그 최고의 쌍포를 구축하다.

–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시절 스기모토 유타로 (사진 출처 : 닛칸스포츠 日刊スポーツ)
도쿠시마현 출신인 스기모토 유타로는 고등학교 시절 투수였다. 1학년 때 소속 학교인 도쿠시마현 상업고등학교가 고시엔에 출전했을 당시 벤치 멤버였지만 등판 기회는 없었고, 2학년 때에는 본인이 에이스로 자리 잡았으나 고시엔 진출에는 실패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오야마가쿠인대학에 진학한 스기모토는 투수로서 소질을 인정받았으나 본인의 희망으로 포지션을 외야수로 변경했다. 1학년 가을리그에는 지명타자로 출전하다, 2학년 가을리그부터 4번 타자 + 외야수로 정착한 스기모토는, 소속 리그 토도 대학 리그 역사상 19년 만의 사이클링 히트 기록과 함께 베스트나인을 수상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시절 콤비를 이뤘던 요시다 마사타카와 스기모토 유타로 (사진 출처 : Number Web)
3학년 때에는 2년 후배인 요시다 마사타카와 함께 3번 요시다 – 4번 스기모토 콤비를 이루며 무려 3번의 백투백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고, 4학년 가을리그에서는 훗날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를 걸쳐 MLB의 시카고 컵스로 향하는 코마자와대학의 이마나가 쇼타를 상대로 2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는 등 자신의 힘을 증명해 나갔다.
이때부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라오우’의 모습을 홈런 세레머니로 하며, 라오우와 같이 엄청난 체격을 자랑하기에 주변 사람들은 그를 ‘라오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대학 1부 리그 통산 성적은 83경기 309타수 타율 .262 9홈런 81안타 32타점. 나무 방망이를 사용하는 아마추어 단계라는 것을 고려하면 장타력은 분명히 매력적인 선수지만, 문제는 삼진을 너무 많이 당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장타력이 좋았음에도 대학 시절 통산 OPS는 0.7을 겨우 넘길 정도로 출루 능력은 좋지 못했다. 흔히 보이는 장타력에 올인한 유형이었다.
2. ‘라오우’, 사회인 야구에서 드래프트 10라운드 지명을 받다.

– JR 서일본 시절 스기모토 유타로 (사진 출처 : 베이스볼 온라인)
이런 성적과 스타일로는 프로에 지명되는 것은 힘들었기에, 스기모토 유타로는 대학 졸업 후 프로가 아닌 사회인야구로 향한다. JR 서일본에 입사, 1년 차 때부터 공식전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스기모토 유타로 본인은 JR 서일본에서 잡무를 맡던 이 시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아, 돈을 번다는 것은 이렇게나 어렵구나]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이다.
스기모토 유타로는 JABA 히로시마 대회에서 히로시마 카프 2군 팀의 ‘이케노우치 료스케’를 상대로 초대형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으며, 2년 차 때부터는 팀의 중심타자로 자리매김한다. 사회인 야구에서 직장 생활과 야구를 병행하고 있음에도 190cm라는 거구에서 나오는 변함없는 장타력은 여전했고, 이를 바탕으로 2015년 드래프트에서 오릭스 버팔로스에 10라운드에 지명받으며 사회인 야구에서 프로야구로 향한다.
NPB 드래프트는 고등학생, 대학생뿐만 아니라 사회인 야구 선수들도 지명하는데, 보통 6~7라운드 정도까지 뽑고 마는지라 그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스기모토가 대학교 시절 보여준 탄탄한 장타력, 이마나가 쇼타를 상대로 보여준 연타석 홈런 등 번뜩이는 기량을 보여줬음에도 10라운드에 지명된 것은 프로 스카우터들이 스기모토의 프로 정착 가능성이나 성장 가능성을 낮게 봤다고 볼 수 있다.
스기모토는 전체 88명 중 87번째로, 사실상 가장 마지막에 뽑힌 선수다. 전통적으로 슬러거가 부족했던 오릭스 버팔로스의 팀 사정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대학+사회인 경력의 26살 신인을 파워 단 하나만 보고 안고 죽자는 생각으로 데려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어쨌든 프로에 지명된 스기모토는 계약에 합의하며 입단, 같은 해 1라운드에 오릭스에 뽑힌 대학 시절 콤비 ‘요시다 마사타카’와 함께 드래프트 동기로 팀에 입단한다. 대학 시절 쌍포가 같은 해 최상위 순번과 최하위 순번이라는 기묘한 인연으로 다시 뭉친 것이다.
3. ‘라오우’, 프로에 지명받았으나 험난한 미생의 여정이 시작되다.

– 2015년 드래프트에서 10라운드에 지명된 스기모토 유타로와 버팔로스의 야나가와 코지 스카우터 (사진 출처 : 데일리스포츠)
비록 10라운드에 지명, 막차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팀 선배인 ‘이토이 요시오와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히며 자신의 프로 생활의 목표가 ‘이토이 요시오’라는 것을 밝힌 스기모토 유타로.
실제로 이토이 요시오는 스기모토 유타로처럼, 처음에는 투수였으나 외야수로 전향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스기모토 유타로는 “몸을 단련하고, 체격을 이토이 씨처럼 키우고 싶다”라며 포부를 밝히기도 했으며, 그를 지명한 ‘야나가와 코지’ 스카우터는 “우타 중에서도 멀리 공을 날려 보내는 타자는 그리 많지 않다. 장거리 포로서 트리플 쓰리를 노리는 선수로 성장하길 기대한다”며 그가 가진 장타력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의 커리어 초반은 순탄치 않은 미생 그 자체였다. 2016년 스프링캠프부터 1군과 동행했고, 시즌 중반 중견수 포지션으로 1번에 전진 배치돼서 데뷔했으나 무안타로 물러나야 했고, 8월에는 계속 아팠던 오른쪽 팔꿈치의 문제가 심각해지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후 장타자가 부족한 팀의 사정상 3년 연속 스프링캠프는 1군에서 맞이했으나, 2군에서는 가치를 보여주는데 1군만 올라오면 부진하여 강등되는 패턴이 반복됐다. 그 와중에도 데뷔 첫 안타를 리드오프 홈런으로 친다거나, 2018년에는 2경기 연속 만루홈런을 치고, 2019년 데뷔 첫 1군 4번 타자 출장에서는 멀티 홈런을 치며 자신의 장타력을 팬들에게 과시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4. 나카지마 사토시 감독의 믿음과 전폭적인 지지

– 새롭게 오릭스 버팔로스 1군 감독으로 임명된 ‘나카지마 사토시’ (사진 출처 : 오릭스 버팔로스 공식)
이렇게 별 볼일 없던 커리어는, 2020년 8월 20일, 1군 감독 ‘니시무라 노리후미’ 감독의 퇴임으로 인해 2군 감독이자 팀 레전드인 ‘나카지마 사토시’가 1군 감독 대행으로 승격되며 반전의 모멘텀을 맞이한다.
ラオウ、一緒に行くぞ (라오우, 함께 가자!)
– 나카지마 사토시 감독
8월 21일 1군 승격 전, ‘나카지마 사토시’ 감독은 2군 훈련장에서 만난 스기모토 유타로에게 단 한 마디만을 남겼다. 짧은 이 한 마디에는 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1군 승격 직전 그에게 ‘함께 올라가자’라는, 강한 믿음과 의지가 담긴 짧지만, 강력한 격려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이 말과 함께 나카지마 감독과 함께 1군으로 향한 스기모토는, 승격 당일 세이부를 상대로 선발 출장하여 동점 적시타를 때려내는 등 첫날부터 좋은 활약을 펼쳤고, 이런 활약은 시즌 끝까지 이어지며 41경기 127타수 34안타 2홈런 타율 .268 출루율 .340 장타율 .354로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발전 가능성을 보여줬고, 드디어 1군에 정착하며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5. 10라운드, 88명 중 87번째라는 역대 가장 낮은 지명순위 홈런왕이 되다.

– 2021년 드디어 포텐셜을 터트린 스기모토 유타로 (사진 출처 : 닛칸스포츠 日刊スポーツ)
1군에 정착한 이후 처음 맞이한 2021 시즌. 나카지마 사토시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 아래 기회를 받으며 개막부터 꾸준히 출전한 스기모토 유타로는 4월부터 홈런포를 가동하며 팀의 장타력을 책임지기 시작했다. 오릭스 버팔로스는 2021년 시즌 초반 하위권에 뒤처졌지만, 스기모토의 활약을 비롯해 주축 선수들의 활약으로 인해 점점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런 활약이 계속되자, 시즌 도중부터 4번 타자로 기용되기 시작했고, 타순이 4번으로 조정되며 중심 타자라는 막대한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타력을 과시하며 8월까지 2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하며, 대학 시절 콤비이자 입단 동기인 ‘요시다 마사타카’와 함께 중심 타선을 구성하여 오릭스의 상위권 경쟁을 이끌었다. 팀 역시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교류전 우승을 이룩했고, 이를 시작으로 점점 뚜렷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 스기모토 유타로와 함께 세레머니를 하고 있는 요시다 마사타카 (사진 출처 : 아사히 신문 朝日新聞)
9월에 들어서도 페이스는 꺾이지 않았고, 시즌 말미 ‘요시다 마사타카’가 부상으로 이탈했음에도 스기모토는 꾸준한 활약으로 팀 타선의 공격력을 책임지며 오릭스 버팔로스의 25년 만의 퍼시픽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본인도 홈런 32개로 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10라운더 스기모토 유타로의 홈런왕 수상으로 인해, 이전 기록이었던 7라운드에 한신에 지명됐던 ‘카케후 마사유키’의 기록을 경신하며, 역대 가장 낮은 지명 순번 홈런왕이라는 인생 역전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이 시기 활약의 원인으로 스기모토 유타로는 ‘감독의 신뢰’를 그 요인으로 꼽았다.
감독님이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기회를 주셨어요. 그게 가장 컸죠.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계속 기용해주신 덕분에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 스기모토 유타로


– 스기모토 유타로의 세레머니는 그가 ‘라오우’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사랑 받는 이유다 (사진 출처 : 닛칸스포츠 日刊スポーツ)
스기모토가 보여준 놀라운 활약은 주변 선수들까지 놀라게 했다. 그의 부진했던 지난날을 아는 팀 동료들은 ‘스기모토가 이렇게까지 잘 해낼 줄은 몰랐다’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팬들 역시 그의 예상치 못한 활약에 열광했다. 팬과 언론은 그의 평소 홈런 세레머니에서 비롯된 별명인 ‘라오우’에 빗대어 ‘라오우의 시대가 도래했다’라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고, 그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야마모토 요시노부 – 미야기 히로야 – 타지마 다이키 – 야마자키 소이치로 – 야마사키 사치야’라는 막강한 선발 로테이션에서 비롯된 투수력과 타선의 활약에 힘입어 클라이막스 시리즈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를 꺾고 일본 시리즈에 진출한 오릭스였지만,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한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상대로 타선이 부진하며 일본 시리즈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룩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라오우’와 오릭스 버팔로스가 보여준 호성적은 팬들에게 내년을 기대하게 했다.
6. 홈런왕에서 치욕스러운 2군 강등, 그리고 교류전 타격왕이라는 반전.

– 찬스에서 헛스윙 삼진을 당하고 돌아가는 스기모토 유타로 (사진 출처 : 주니치 신문 中日新聞)
스기모토 유타로의 2021년 활약을 지켜본 팬들은 그가 2022년에도 여전히 오릭스 버팔로스의 중심 타자로서 활약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스기모토 유타로의 2022년 전반기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4월까지 타격감이 전혀 살아나지 못하며 타율은 9푼까지 떨어졌고, 그 와중에 지바 롯데 마린스의 ‘사사키 로키’의 퍼펙트 게임을 완성하는 19번째 삼진을 당하며 허용 타자로 영원히 남게 되는 등 연이어 수모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카지마 감독의 스기모토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 4월 한창 타격 부진으로 고생하던 중 8번 타자로 출장해 선제 타점을 만들어낸 경기가 끝난 후, 나카지마 감독은 다음과 같이 격려하기도 했다.
숫자가 나쁜데도 저렇게 필사적으로 물고 늘어질 때 좋은 결과가 나온다. 그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나카지마 사토시 감독의 경기 후 격려
그러나 이런 격려와 믿음에도 불구하고 반등하지 못하자, 5월 19일 스기모토 유타로는 2군으로 강등된다.

– 2022년 교류전에서 수위타자 상을 수상한 스기모토 유타로 (사진 출처 : 오릭스 버팔로스 공식 X)
이런 조치가 그에게는 자극이 됐던 것일까? 2군으로 내려간 지 불과 하루만인 5월 20일, 다시 콜업이 된 스기모토 유타로는 5월 24일부터 진행된 교류전에서 타율 .391로 활약하며 교류전 타격왕을 차지했고, 퍼시픽 리그 우수 선수상을 수상하며 반등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상승세에 힘입어 9푼까지 떨어졌던 타율은 어느새 2할 5푼까지 올라왔다. 오히려 7월에는 잘 치고 있던 스기모토 유타로를 과감하게 1번 타자로 기용, 분위기 반전을 도모할 정도로 팀 내에서도 눈에 띄게 좋은 타격감을 보여줬다.
분위기가 정체됐다면 변화가 필요하다. 누군가 과감히 나서서 팀의 변화를 이끌어야 할 필요가 있다. 라오우가 이 임무에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 나카지마 사토시 감독이 밝힌 5년만의 스기모토 유타로를 1번 타자로 기용한 이유
이후 좋았던 페이스는 살짝 주춤하여 타율은 2할 4푼대에서 형성이 됐지만 꾸준히 홈런과 장타를 신고하며 8월까지 홈런 15개로 팀내 1위를 기록했고, 타율은 낮더라도 득점권 타율이 3할 2푼대에 육박하며 중심타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지만, 8월 이후 다시 부진하며 선발에서 제외되며 고전했다. 최종적으로는 105경기에 출장, 타율 .235/OPS .722 15홈런 51타점으로 작년보다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7. 부진과 비난을 이겨내고 일본 시리즈 MVP가 되다.

–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클라이막스 시리즈에서 역전 투런 홈런을 치고 환호하는 스기모토 (사진 출처 : 파리그.com パ・リーグ.com)
정규 시즌 분명 번뜩였던 순간도 있었지만, 시즌 초와 8월 이후 부진했던 모습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스기모토 유타로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나카지마 감독 역시 이를 우려해 요시다 마사타카를 4번에 배치하고, 스기모토 유타로를 7번에 배치하여 1차전 선발 라인업을 발표했을 정도로 스기모토에 대한 믿음이 팀 안팎에서 많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팬들은 그의 지난 시즌 대활약에 대해서 ‘플루크’라고 평가절하하며 그에 대해 저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기모토 유타로는, 이러한 세간의 의심을 완벽한 활약으로 잠재워 나가기 시작했다. 1차전 7번 타자로 출장한 스기모토는 4회말 좋은 선구안으로 선제점을 얻어내는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냈고, 5회말에는 깔끔한 우전 적시타로 1타점을 추가하며 5:0 승리에 기여했다.
1차전의 활약은 2차전에도 이어졌다. 6번 타자로 나선 2차전, 1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스기모토 유타로가 내야 안타로 동점을 만드는 1타점을 기록했고, 5회말에는 선두타자 요시다 마사타카가 안타를 치고 나가자 경기를 뒤집는 역전 투런 홈런을 치며 혼자 3타점을 기록,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이런 스기모토의 활약에 힘입어, 오릭스 버팔로스는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부전승 포함 4승 1패로 패퇴시켰고, 2021년 자신들을 꺾고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리 매치를 확정시킨다. 2021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압도적인 투수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스기모토를 포함한 타선의 부진으로 인하여 우승이라는 대업을 내줘야 했다.
스기모토 유타로는 이번에야말로 지난해의 수모를 반복하지 않고 우승하겠다는 것을 자신의 플레이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홈런은 비록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으나, 꾸준히 안타를 치며 타선의 활력소가 됐으며, 4차전과 6차전에는 게임의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타를 쳤고, 7차전 2:0으로 앞선 상황 5회초에는 2사 만루 상황에서 스기모토가 친 타구를 중견수 ‘시오미 야스타카’가 놓쳐 주자가 전부 들어오며 5:0으로 점수가 벌어졌다. 경기뿐 아니라 일본 시리즈 전체 향방에 쐐기를 박은 장면이었다. 8회말 4실점 하며 경기가 5:4까지 좁혀졌던 것을 생각하면, 이 장면은 그야말로 오릭스 버팔로스의 우승을 결정짓는 장면이었다.


– (좌) 일본 시리즈 MVP 트로피를 받는 스기모토 유타로 (사진 출처 : 오릭스 버팔로스 공식)
– (우) 우승 후 합동 기자회견에서 ‘라오우’ 세레머니를 보여주는 스기모토 유타로 (사진 출처 : 파리그 공식 X)
일본 시리즈 MVP는 당연하게도, 결승타를 2번이나 치며 시리즈 내내 결정적인 활약을 했던 스기모토 유타로의 몫이었다. 2016년 10라운드에서 뒤에서 두 번째로 뽑힌, 꼴찌 유망주가 힘든 역경을 이겨내고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이후 26년 만의, 버팔로스라는 이름의 옛 주인이자 오릭스에 합병된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스가 끝내 해내지 못했던 61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끈 것이다.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끈 스기모토 유타로는 자신이 드래프트 되던 2015년, “내 이름이 불리지 않을 것 같다”라고 스스로 생각했으며, 10라운드에서 88명 중 87번째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기 전까지 매우 긴장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또 2018년 1군과 2군을 왔다 갔다 하며 위태로운 커리어를 이어 나가던 시기에는 “언제 팀에서 방출될지 모른다”라며 스스로에게 절망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무명 생활을 버티며 살아남기 위해 스기모토는 체력 훈련과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자기 관리에 꾸준히 시간을 투자하며 버텼고, 이러한 그의 노력이 그의 성공 스토리의 밑거름이 됐다. 입단 당시에는 팀과 팬들에게 큰 기대를 받지 못한, 그저 파워 툴 하나만 보고 마지막에 뽑은 ‘노망주’에 불과했으나, 그는 긴 무명 생활을 버텨 1군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내며 자신을 믿고 뽑아준 팀과 자신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자신을 증명하는 데에 성공했다.


– 사진 출처 : 오릭스 버팔로스 공식
스기모토 유타로의 야구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프로 입단 후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채 무명 생활을 이어가며, 때로는 방출의 위기와도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을 버텨내며 자신만의 스윙을 다듬었고, 결국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그의 커리어뿐 아니라 오릭스 버팔로스의 역사마저 바꿔 놓았다.
그의 방망이는 단순한 홈런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좌절 끝에 피워낸 희망이었고, 좌절에 익숙한 이들에게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포기하지 않는 한, 인생은 언제든 반전될 수 있다.”
무명의 시절에서 팀을 이끄는 영웅이 되기까지, 스기모토 유타로의 발자취는 야구라는 스포츠를 넘어 삶을 버텨내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기모토 유타로는 일본 시리즈 MVP 수상 이후에도, 오릭스 버팔로스의 중심이자 간판 타자로 활약하며 팬들에게 ‘라오우’라고 불리며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이름은 ‘라오우’라는 별명과 함께, 끝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낸 사내의 상징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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