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이 시작하기 전 FA 선수 두명이 합류한 한화는 많은 기대 속에 시즌을 시작했다. 실제로 활약은 이어졌는데 33년 만에 전반기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한화는 10연승 이후 한 차례 흐름이 깨졌고, 7월 말부터는 하락세가 뚜렷해졌다. 최근에는 6연패를 기록하며 시즌 초와 다른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선발진에 공백이 생겼고 불펜이 무너지며 투수진 균열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화살은 시즌 전 선발 자원으로 영입한 엄상백에게 향했다.
엄상백의 부진, 무너지고 있는 한화 이글스
FA 계약 당시 엄상백을 향한 기대는 컸다. 한화는 안정적으로 로테이션을 소화할 확실한 카드로 믿었다. 4년 최대 78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했다. 하지만 현재 평균자책점 7.42로 부진 중이다. 1승 7패라는 초라한 성적이 쌓이면서 1년차부터 FA 실패라는 비판이 생겼다.
코칭스태프 평가는 조금 달랐다. 양상문 투수코치는 “구위 자체는 괜찮다. 하지만 공이 가운데로 몰리면서 결과가 나빠진다”고 말했다. 정신적으로 압박이 크고 조급해 보인다며 심리적 부담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경문 감독 역시 “FA 첫해라는 부담을 이겨내야 한다. 지금 엇박자가 난 것 같다”고 언급했다.
과연 문제는 심리적인 부담만일까? 마음가짐만으로 평균자책점이 약 3점 오른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엄상백의 문제점은 곧곧에서 발견된다.
정답 같은 시작, 문제 있는 과정

투구 시작은 교과서적이다. 머리와 가슴이 뒷다리 위에 체중을 쌓는다. 두 손은 명치 앞에서 차분히 모인다. 레그킥이 올라갈 때 상체는 살짝만 몸을 비틀어 힘을 모은다. 몸이 앞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하며 체중이 전진한다. 스트라이드가 길게 뻗는 순간 골반이 먼저 열리고 어깨는 반 박자 늦게 따라온다. 허리 벨트는 이미 홈플레이트를 바라보지만 가슴은 3루 쪽을 보고 있어 상하체 분리가 걸린다.
탄성은 곧 회전 속도로 바뀐다. 발이 땅이 박히면서 글러브가 가슴 앞에서 브레이크를 걸어 회전축을 흔들리지 않게 잡는다. 팔은 하이 스리쿼터 슬롯에서 채찍처럼 튕겨 나온다. 공을 뗀 뒤엔 손이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도는 동작(프로네이션)과 팔로스루가 이어진다.

그러나 세밀하게 보면 문제가 있다. 앞다리 벽이 체중을 단단하게 받아내지 못한다. 앞다리가 충격을 흡수해 버리니 모아 둔 에너지가 샌다. 하체가 브레이크를 못 걸어 주면서 제구가 흔들린다. 하체가 버티지 못해 미끄러지듯이 앞 어깨가 빨리 열려 회전축이 짧아진다. 상체를 홈플레이트 쪽으로 이동하는 드리프트 동작 형성에도 한계가 있다. 타자 눈에 공이 더 일찍 보인다. 디셉션 동작은 약해진다.
글러브를 끼고 있는 왼손도 문제다. 글러브는 가슴 앞에서 잠그면 축은 세워진다. 하지만 허리선 아래로 흘러내리며 앞쪽으로 기울어진다. 몸통이 같이 무너지고 회전축이 더 짧아진다. 변화구 궤적을 만드는 데 불리해진다. 릴리스 포인트는 들쭉날쭉해진다. 원하는 곳에 정확히 던지기도 어려워진다. 로케이션 제구가 안되다 보니 몰리는 공과 빠지는 공이 많아진다. 통산 엄상백 볼넷율은 9%로 상당히 높다. 이번 시즌은 10%다.
불안정함은 엄상백에게 치명적이다. 평균 145km대 포심과 130km 초반 체인지업, 사실상 투피치에 가까운 구성이라 한 구종이라도 제구가 틀어지면 전체가 무너질 위험이 크다.
투피치인 투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피칭 터널이다. 피칭 터널이란 공이 손에서 떠나 초반 서로 다른 구종이 같아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연결되는 터널이 길면 타자는 구종을 늦게까지 구분하지 못해 스윙 타이밍을 뺏긴다.
엄상백은 드리프트와 긴 스트라이드, 큰 상하체 분리가 만들어 주는 전진 릴리스 덕분에 원래 초반 터널을 만들기에 유리하다. 그런데도 앞다리 벽과 글러브 브레이크가 무너져 이점을 상쇄한다. 두 구종 출발점과 각도 차이가 크니 초반부터 따로 보인다. 타자는 대처하기 쉬워진다.
앞으로 엄상백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무엇을 바로잡아야 할까? 앞다리 벽을 다시 세워야 한다. 앞발이 딛는 순간 무릎은 살짝 구부려도 버텨야한다. 차가 멈출 때 브레이크를 밟아 차체가 앞으로 더 밀리지 않게 하는 것과 같다. 잡히면 골반이 먼저 어깨가 나중에 열리는 타이밍이 다시 맞추기 쉽다. 상체도 홈플레이트 쪽으로 숙여 넣을 여유가 생긴다.
글러브는 명치 앞에서 잠가야한다. 허리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가슴 앞에 고정하고, 몸이 글러브 쪽으로 끌려오듯 회전을 시작하면 축이 길고 곧게 선다. 팔이 돌아 나오는 길이 일정해지고 회전축도 안정된다. 릴리스 포인트가 한 점으로 모이니 컨트롤도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터널을 의식한 포심, 체인지업 운용이 중요하다. 초반 궤적을 같게 만들겠다는 목표로 포심은 몸통 앞에서 밀어 넣고 체인지업은 같은 팔속도에서 손목만 부드럽게 안쪽으로 비틀어 떨어뜨리는게 중요하다. 캐치볼부터 릴리스 지점을 한 발 앞에 꽂는 느낌을 반복하면 두 공 출발점이 겹치고 후반 분리가 커진다. 타자 눈에는 같다가 늦게 다른 공으로 보인다.
엄상백과 한화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객관적으로 FA 계약 첫해 스타트는 아쉽다. 기대만큼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1군 엔트리에 등록도 되지 않았다. 팬들의 실망과 비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 길은 남아 있다. 코치들도 말했듯 구위 자체는 살아 있다. 디테일을 교정하고 자신감을 되찾는다면 충분히 다시 올라설 수 있다.
말처럼 쉬운 과정은 아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한화의 우승 여정에 엄상백이 다시 힘을 보탠다면 지금의 아쉬움은 오히려 반전 드라마의 서막이 될 수 있다. 흔들리는 현재가 아닌, 다시 선수와 한화가 함께 일어나는 순간이 오길 기대해본다.
Infield Report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