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이 넘는 KBO의 역사에서 영구결번이 된 인물은 올해 오승환을 포함 총 18명이다. 명예의 전당이 없는 우리나라 야구계에서 영구결번이 사실상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한 선수에 관한 영구결번 논쟁이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게 바로 ‘영결컷’이다. 영결컷이란 ‘어떤 선수가 구단에서 영구결번을 받으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비공식 기준선’을 뜻하는 단어로 KBO를 다루는 대다수의 커뮤니티에서 공공연히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영결컷의 기준은 무엇일까? 팬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자 지난 9월 9일부터 12일까지 220명의 KBO 팬을 대상으로 구글 폼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인스타그램 등 SNS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1020 젊은 팬들의 참여율이 약 85%로 설문 응답의 주를 이뤘다. 한편 영결컷을 알고 있는 팬의 비율이 약 82%로 다수의 팬이 커뮤니티를 통해 단어 및 논쟁을 접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먼저 영결컷의 유의미함에 75%가 넘는 팬들이 동의를 표했다. 앞서 언급했듯, KBO에서는 명예의 전당이 없기에 영구결번의 가치와 희소성을 강조하는 의견이 많았다. 또한 영결컷의 1순위로 한국시리즈 우승 및 MVP 수상과 프랜차이즈 스타로 대표되는 ‘팀 공헌도’가 절반을 넘기며 높은 지지를 받았다. 즉, 한 팀의 영구결번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팀에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한편 2등은 2000안타, 100승 등 유의미한 ‘통산 누적 기록’, 3등은 주장 경험과 뛰어난 팬서비스 등 ‘팀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차지했다.

다음으로 누적 기록 기준, 타자의 적절한 영결컷 기준을 물었다. 선택지는 총 4가지로 통산 1,000타점+(총 26명), 통산 2,000안타+(총 20명), 통산 타율 3할+(총 31명), 통산 300홈런(총 15명)으로 설정했다. 이 중 1위는 절반에 가까운 지지를 받은 ‘통산 2,000안타’가 차지했다. 성구회의 입성 기준이기도 한 2,000안타가 대중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고 인원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1순위 투표 기준, 2위는 ‘통산 타율 3할’, 3위는 ‘통산 300홈런’이 위치했다. 단 15명이라는 적은 수에도 불구, 통산 300홈런이 2-3순위 투표 모두 1위를 차지하지 못한 게 약간의 의문점이기도 했다. 아마 이 중 10명이나 이적을 경험했을 정도로 원클럽맨이 적어 우선순위에서 배제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다.1 하지만 영구결번이 사실상 확정인 최정 제외 6명이 영구결번되었을 정도로 중요한 마일스톤임은 부정할 수 없다.


투수의 적절한 영결컷 기준으로는 선발-불펜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선발 투수의 선택지로는 통산 120승+(총 19명), 통산 1,600이닝+(총 27명), 통산 1,200탈삼진+(총 24명)이었다. ‘통산 120승’이 여유롭게 투표 1위를 차지했으며, 1순위 기준으로는 ‘통산 1,600이닝’이 2위였으나 2-3순위에서는 ‘통산 1,200탈삼진이 기록하며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설문을 통해 클래식 스탯인 투수의 승리가 가치는 점점 떨어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레전드를 평가하는 기준으로는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불펜 투수의 선택지는 통산 600경기+(총 31명), 통산 150세이브+(총 11명), 통산 100홀드+(총 17명)로 구성했다. 이중 ‘통산 150세이브’가 과반수의 지지를 받아 1위를 기록했으며 ‘통산 600경기’는 1순위 및 3순위 투표에서, ‘통산 100홀드’는 2순위 투표에서 각각 2위를 차지했다. 투표를 통해, 불펜 투수의 최고 마일스톤은 역시나 세이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송진우와 김용수 같은 전천후 투수 제외 오승환이 KBO 최초의 불펜 투수 영구결번일 정도로 유독 불펜 투수에게는 영구결번이 각박한 편이다.2 물론 투수 영구결번 자체가 7명밖에 안 될 정도로 적은 것도 현실, 불펜 투수들에게도 영구결번의 문이 조금은 더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결컷의 기준을 수상 기준으로 바꾸어 투표를 이어갔다. 선택지는 총 5가지로 골든글러브 수상, 시즌 MVP, 포스트시즌 MVP, 국제대회 금메달, 타이틀 홀더로 설정했다. 1순위 기준, 시즌 MVP가 1위를 차지했으며 포스트시즌 MVP, 골든글러브 수상이 그 뒤를 이었다. 아무래도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동시에 1년에 단 한 명만 받을 수 있는 상이기에 시즌 MVP에 대한 가중치가 제일 높았음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영구결번자의 절반에 달하는 9명이 시즌 MVP 수상자이기도 하다(총 16회 수상). 한편 1~3순위 전 부문에서 포스트시즌 MVP가 꾸준히 득표한 것을 통해 ‘우승’이라는 업적과 임팩트도 가치가 상당히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바로 영결컷의 높낮이에 관한 팬들의 생각이다. 먼저 비록 리그 단위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팀 내 비중 및 영향력이 상당했던 선수에게 영구결번을 주는 것은 약 70%가 찬성했다. 현 KBO 영구결번이 명예의 전당과 같은 입지를 지니고 있으나, 결국 영구결번이란 리그가 아닌 한 팀에서 부여한다는 것이 찬성의 요지다. 하지만, 영결컷이 높기를 바라는 팬의 비율은 77%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인 결과를 보여줬다. 즉, 타 팀의 여론은 신경 쓰지 않되 우리 팀 내 극소수의 레전드만이 영구결번의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영결컷이 높길 바란다’ 혹은 ‘낮길 바란다’의 이유는 서술형으로 받았는데, 먼저 높길 바란다의 이유로는 “영구결번의 높은 가치를 유지하고 싶다”, “아직은 명예의 전당 느낌이 강하다”, “향후 번호 지급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진짜 레전드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등이 있었다. 역시나 주요한 의견은 ‘영구결번의 희소성’이었는데, 높은 희소성이 높은 가치와 존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골자다.
한편 낮길 바란다의 이유로는 “인상 깊은 추억을 남긴 많은 선수들을 기록하기 위해서”, “객관적 기준이 아닌 팬들의 지지와 여론이 더 중요하다”, “우리 팀에 남긴 이미지가 중요하지, 타 팀 팬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탁월한 성적이 아니더라도 우승 등 공헌도와 임팩트가 더 중요하다” 등이었다. 주요한 의견은 타 팀 여론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그리고 추억할 수 있는 여러 레전드를 영원한 상징으로 남기자는 것이었다. 두 의견 모두 존중받아 마땅한 의견이며 근거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영구결번의 기능들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경우, 영결컷이 낮길 바라는 측으로 리그 단위의 수상실적은 적어도 원클럽맨 또는 그에 준하는 선수들에게는 영구결번의 기회를 넓혀 팀의 역사와 브랜딩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찬반을 통틀어 영결컷에 관한 다양한 의견도 수집했다. ‘영결급인가라는 생각이 들면 영구결번은 무리다’ vs ‘타팀 팬들의 의견을 반영할 필요는 없다’가 가장 주요한 대립이었다. 물론 찬반 측 모두 영구결번은 팬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소속팀에 헌신하며 높은 기여도를 보여준 선수가 영구결번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공통된 의견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차기 영구결번 후보자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가장 많이 언급된 선수들은 KBO를 넘어 한국 야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좌완 트로이카, 류현진-김광현-양현종이었다. KBO 최초의 500홈런을 기록한 최정 역시 많은 지지를 받았으며 팀의 통합우승을 이끈 원클럽맨인 NC 다이노스의 박민우, LG 트윈스의 오지환 역시 많은 팬에게 언급됐다. 더불어 롯데 자이언츠의 전준우, KIA 타이거즈의 김선빈, 두산 베어스의 양의지, 삼성 라이온즈의 구자욱도 언급되며 팬들의 여론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영구결번 논쟁에 정답이란 없다. 그리고 은퇴 전까지 영구결번 확실과 불확실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은 그어져 있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프로야구 선수는 팬들의 사랑을 기반으로 존재하며, 그들의 지지와 응원 없이는 그 누구도 영구결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논쟁 없이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탁월한 성적과 함께 우승이라는 결실까지, 다양한 추억을 남기며 홈구장에 자신의 등번호를 영원히 남길 레전드가 더 많아지기를 기원한다.
- 물론 양준혁, 박경완처럼 300홈런을 기록한 비(非)원클럽맨의 영구결번 사례도 존재한다. ↩︎
- 오승환 포함, 150세이브 이상 투수들 중 원클럽맨이 고작 3명에 불과한 것도 주요 원인이다. 100홀드의 경우 원클럽맨은 단 6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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